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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초월하는 사회적 책임감을 보여주는 22명의 친구 모임, 모두 위안부 할머니들의 친구로서 하나로 뭉쳐

2016-07-06 陈茜 商学院商学院商学院商学院진천 <상업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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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모두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쑤즈량 교수는 왜 한국기업이 “22명의 친구모임"을 설립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그때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감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예전에 몇몇 기업가들이 20만에서 200만위안까지 기부금을 보내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 위안부 생존자 광서리푸 현 위소란 달관의 한 노인

1. 위안부"문제에 주목하는 "22명의친구모임설립

2016년 7월 4일, 북경의창공간에서 특별한 뉴스 브리핑이 다소 숙연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22명의친구모임"은 30여명의 중한기업가와 교수 및 대학생들이 함께 설립한 “민간 자선 기금"이다. 그들이 주목하는 그 특정 집단의 평균 연령 90세 이상이며, 국내 생존자가 약 20명이고 (프로젝트의 이름이 결정되었을 당시에는 22명이 모두 생존), 전쟁 때 많은 굴욕과 인권 유린을 겪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도 몸과 마음 속에는 깊은 고통이 남았다. 이 분들은 전쟁의 희생양인데, 우리들은 이 “위안부”라는 이름을 점점 잊어버리고 있다.



▲ 브리핑 현장에서 양동하 씨가 "22명의친구모임"의 대표로서 쑤즈량 교수와 위안부 할머니들께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협력 의향서에 서명을 하고 있다.  

상하이 사범 대학의 쑤즈량 교수는 국내 위안부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로, 올해 남경이지향위안소의 관장으로 초청, 임명되었다. "위안부"는 이미 전 세계에 다 알려진 문제로, 1992년 1월에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모여서 집회를 열고, 배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었다. 그 후 일본 국회의원 윤동수자가 "위안부"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고, 일본이 2차대전때 저지른 어두운 범죄를 직면했다는 소식은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고 학계에서도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1993년 쑤즈량 교수가 일본 동경대학교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있었을 때 한 일본 학자가 교수에게 세계에서 첫 번째 설립된 위안소가 상하이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이것은 쑤즈량 교수를 적잖게 놀라게 했다. 왜냐하면 쑤즈량 교수는 상하이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인데 위안부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후로 쑤즈량 교수는 위안부에 대해 23년의 세월을 거쳐서 연구해왔다.

 


▲ 상하이 사범 대학의 쑤즈량 교수는 국내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로, 현지 조사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상하이에는 166개의 일본군 위안소가 있고, 세계 2차대전 때 약 40만 명의 여성들이 강제로“성노예”가 되었다. 그러나 쑤즈량 교수는 문제의 본질은 숫자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렇게 국가의 힘으로 여성들을 강제로 "성노예"로 만든 것은 오천 년의 인류 문명사에서도 없었던 일이다.” 브리핑 현장에서 쑤즈량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피해자들이 몇 명인지 집계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문제의 본질은 숫자에 있지 않다.” 현지 조사 연구에 따르면, 세계 2차대전 때 일본군들에 의해 강제 동원되고 속임을 당해서 “성노예”가 된 중국 여성의 수가 무려 20만 명 이상에 달하며, 당시 식민 지배를 받았던 한국에도 14-16만명이 있었고, 동남아시아, 네덜란드 등도 피해 국가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일본 우익 세력은 이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였고 개념까지 왜곡시켜버렸다. 이 사실은 위안부 생존자들의 상처를 더 아프게 했고, 현재 생존자들은 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일본 정부의 사과를 기다리고 있다.

 


▲ 2011년 한국 민간 단체가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한국위안부소녀동상을 설치했다. 매 주 수요일, 몇몇 한국 위안부 피해자들이 여기에 모여서 집회를 열고 시위를 한다. “수요 집회”는 24년 간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었다.

현재 "위안부소녀”동상은 아직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조용히 의자에 앉아, 반짝이는 눈빛으로 두 손을 꼭 움켜쥐고 그녀에게 사과해야 할 가해자를 향해 단단히 노려보고 있습니다. 언론에 따르면 작년 12월까지 한국 위안부 생존자가 48명 밖에 남지 않았으며, 평균 연령이 이미 89살에 이르렀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연령이 나날이 높아지는 것에 대해 걱정하며, 역사를 바로잡고 늦게라도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일본과의 교섭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 지금 하지 않으면 늦는다.

쑤즈량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현재 중국 위안부 생존자는 20명 밖에 없으며, 산시 성, 후베이 성, 후난 성, 광시 성, 하이난 성에 생활하고 있고, 평균 연령은 90.5세라고 한다.

 


▲ 위안부 생존자였던 주희향 할머니는 부녀 항일 구국 연합회 주임 공산당원이었으나 일본군한테 잡혀서 20일이나 성폭행을 당했고 임신 7개월 때 강제로 유산을 당했고이것은 이후 불임으로 이어졌다. 이 할머니는 2012 12 21일 별세했다.​

주희향 할머니는 산시 성 우현에서 생활하던 성폭행 피해자로, 그로 인해 불임이되었으며, 올해 2012년 12월에 별세하셨다. 쑤즈량 교수는 그 해 할머니 댁을 방문하였는데, 그 때 할머니의 오른쪽 다리는 골절된 상태였지만 나뭇가지와 천으로만 묶은 다음에 구들에 앉아있었다. 대다수의 위안부 생존자들은 생활고를 겪고 있으며 질병의 고통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 위안부 생존자였던 부옥여 할머니는 하이 여족이였다 (1920 – 2014). 항일전쟁 당시 일본군은 남진계획을 통해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 제왕이 되고자 하는 꿈을 꾸고 있었다. 하이 남쪽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부옥여 할머니 같은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22명의친구모임"은 현재 위안부 생존자들을 위해서 경제, 의료, 생활 방면으로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는 동시에, “위안부의 소리”를 세계 기록 유산으로 신청하는 등 “위안부”와 관련된 과제 연구에 대한 지원 또한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자선 재단에 대한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한국과 중국 양국의 기업가들이었다. 양국 모두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같은 처지에 있고 요구하는 바 또한 같기 때문이다. 참여자들은 모두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는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여겼다.  

한국에는 이렇게 위안부 생존자들을 위해 도움을 주는 민간 단체들이 많고, 개인과 기업들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또한 한국 정부는 “나눔의 집"을 건립하여 위안부 생존자들을 위한 전문 양로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쟁사 및 과거사 문제, 그리고 위안부 문제는 중ㆍ일외교에서 아주 민감하기 때문에, 현재 중국에서는“위안부”의 권익 보호와 지원 활동 대다수가 민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1999년 쑤즈량 부부가 상하이 사범 대학에 위안부연구 센터를 창립한 것도 그 중 하나이다.

원래 연구소의 주된 업무는 위안부에 대해 연구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일이었는데, 2000년 이래로 연로하신 중국 위안부 할머니들이 생활하시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기부금을 마련해서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매 년 1인 당 1200위안부터 시작해서, 지금 현재 매 년 1인 당 5000위안까지 원조를 하고 있으며, 동시에 의료비를 부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실 경우 장례식 비용 또한 지원하고 있는데, 17년 간 약 500만 위안을 지원해왔다. 쑤즈량 교수에 따르면, 대부분은 개인 기부금이었으며, 일찍이 기부 의사를 밝힌 기업들이 몇몇 있었으나 결국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한다.

3."위안부"문제는 왜 한국기업의 사회적 책임감을 불러일으켰는가?

“우리들은 모두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쑤즈량 교수는 왜 한국기업이 “22명의 친구모임"을 설립했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때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감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예전에 몇몇 기업가들이 20만에서 200만위안까지 기부금을 보내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한국CKT개발주식회사 양필승 사장님은 "22명의친구모임"의 설립자 중 한 명이다. 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교 중국사 박사이며,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한국 건국대학교에서 중국 현대사를 가르쳤다. 역사 의식을 가지고 있는 한 한국의 기업가로서, 그는 줄곧 위안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으며, 결국 이 민감한 역사 문제는 수시로 한·중·일 삼국의 외교 관계에 영향을 미쳐왔다.

그는 한국 "위안부"의 위안소가 대부분 중국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위안부”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중·일 3국 학자들이 서로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 평균 연령이 90세 이상이기 때문에 도움이 더욱 시급한 일이다. "22명의친구모임"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후부터 브리핑이 진행된 오늘까지 불과 2개월이 걸렸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중국의 기업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하지 않으면 시간이 늦었다.”라고 말했다.

현재 이미 중국 기업가 30여명, 특히 여성 기업가들이 이 조직에 가입해서 자신의 힘을 조금씩 기여해서 고난에서 걸어 나온 용감한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일반적으로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는 민간단체들 중에는 여성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그의 딸 양동하 씨가 앞으로 더 많은 일을 맡아 완성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양동하 씨는 줄곧 이 노인들을 “할머니”라고 불렀다. “여성으로서,한국인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이것은 여성 권리의 관련된 문제이고, 동북아 과거사를 해결하는 일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라고 브리핑 현장에서 그녀는 말했다.

양필승 씨의 딸 양동하 씨는 현재 중국에서 창업하고,여성들에게 메이크업 솔루션을 제공하는 전자상거래 기업의 CEO로서, 어떻게 해서 중국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22명의 친구 모임”자선 단체를 설립하는데 참여하게 되었을까?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한 친구 이혜령 씨 때문만이 아니라, 사실 그녀는 일찍이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논문을 썼고, 그리고 한국의 “위안부” 생존자들을 직접 만난 적이 있다. 용감하게 과거의 아픔을 직면하고,가해자가 정의의 심판을 받게 하겠다는 그녀들의 의지에 양동하 씨는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양동하 씨는 이런 노인들을“할머니”라고 부른다.

양동하 씨와 그녀의 아버지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사실 대다수의 위안소가 중국에 있고, 아직 신분을 공개하지 않은 위안부 할머니들도 아직 많기 때문에, 양동하 씨는 더욱이 그녀의 힘을 보태고 싶다고 한다. “여성으로서, 한국인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이것은 여성 권리의 관련된 문제이고, 동북아 과거사를 해결하는 일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라고 브리핑 현장에서 그녀는 말했다. 현재,eMei 쇼핑몰은 “22명의 친구 모임”의 유일한 기업이다. 양동하 씨는 화장은 여성의 권리이기 때문에 여성의 권리에 관심을 갖는 한 회사로서, “위안부”와 같이 여성 권리와 관련된 큰 문제에 대해서 마땅히 책임을 갖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22명의 친구 모임>의 설립 원인을 말하자면, 현직 집행 사무 총장 이혜령 씨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전에 북경 중앙 방송국 사회자였다. 그녀는 올해 3월 한국에서《귀향》이라는 영화를 봤다. 이 영화는 전쟁 때 강제로 중국 동북 지방에 위안부로 끌려와서,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두 명의 한국 소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혜령 씨는 <진리의 13소녀>처럼 여자 영웅 같은 이미지는 없지만, 순수하고 진실된, 아무런 고발, 규탄의 의도가 없는 것 같은 바로 그런 소녀의 모습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우리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상업 투자자가 없었지만, 7만 5천여명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12억 원의 기부금을 모아, 조보래 감독과 그의 팀이 14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쳐서 완성한 작품이다. 오랫동안 기다리는 그 과정에서, 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불행히도 세상을 떠나셨다. 이 영화는 이혜령 씨로 하여금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위안부 생존자들을 위해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래서 그녀는 친한 한국 친구 양동하 씨와 그녀의 부친 양필승 씨를 찾았다.


▲ 영화 <귀향>은 상업 투자자가 없었지만, 7만 5천여명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12억 원의 기부금을 모아, 조보래 감독과 그의 팀이 14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쳐서 완성한 작품이다. 오랫동안 기다리는 그 과정에서, 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불행히도 세상을 떠나셨다.

브리핑 현장에서 양필승 교수는 최근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 중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지갑을 꺼내서 공손하게 헌금함에 돈을 기부했다. 청화대학교의 대표도 자발적으로 기부했는데, 위안부 생존자들의 사망 소식 및 생활 환경에 대해 알고 나서 최근 자발적인 기부금 모금 운동 또한 시작했다.


▲“22명 할머니”를 위해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학생과 현장에서 기부금을 전달하는 양필승 교수

4. 위안부 생존자들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쑤즈량 교수는 얼마 전 7월 1일 세상을 떠나신 산시성 무향현의 임난아 할머니는 13살에 일본군에 의해 잔인하게 짓밟혔다고 소개했다. 나중에 가족들이 일본군에게 돈과 양식을 주고 나서야 할머니는 ‘악마의 소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할머니는 병을 치료하고 자녀를 낳아 길렀다. 올해 1월 연구소 사람들이 할머니를 찾아 뵙고 도움을 드리기 위해 무향현을 방문했을 때,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사과하게 해라”라는 임종유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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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생존자 중 한 명이었던 임난아 할머니는 산시성 무향현 사람이었으며 2016년 7월 1일 새벽 5시 30분, 85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으며, 임종 유언은 일본 정부로 하여금 사과하도록 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사과를 기다리던 위안부 할머니들 중 몇몇은 기다리다 못해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셨고, 그 분들의 목소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고통은 역사에 의해 점차 매장되고 있고, 쑤즈량 교수는 그러한 역사적 유산을 서둘러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쑤즈량 교수는 일본이 돕지 않는 다면, 그들이라도 나서서 돕겠다고 말한다. 현재 “22명의 친구 모임”과 남경위안소 진영관은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고 복지를 제공하겠다는 협력 의향서를 체결한 상태이다.


▲ 2016년 5월 31일 쑤즈량 교수는 중국을 대표해서, 한국, 대만, 일본, 필리핀, 동티모르,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등 11개 국가의 민간단체들과 함께 유네스코에 직접 <일본군 위안부의 소리>라는 명칭으로 세계 기록 유산 등재 신청을 했고 등재를 완료했다.

양동하 씨의 소개에 따르면, 양필승 교수님은 청화대학교 제일 부속 병원에 20명의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프로젝트도 신청했다고 한다. 이혜령씨는 사실 이러한 브리핑은 단순한 기부가 목적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 개최하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모두 미래에 더 많은 기업들이 “22명의 친구 모임”에 가입해서, 하루 빨리 불공정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용감한 할머니들에게 마지막으로 사회의 따뜻함을 전달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복잡한 “위안부”문제에 맞선 쑤즈량 교수와 양필승 부녀의 행동은 우리에게 국경선을 뛰어넘은 정의감과 책임감을 보여준다. 사람에 대한 존중, 역사 앞에서 가장 진실하고 평등하며 공정하고자 하는 노력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은 미약할 지 몰라도, 모두가 함께 큰 꿈을 꾸고 있다면, 그 힘은 합쳐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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